바닷가에 가기로 한 토요일 아침, 여느때보다 날씨는 흐렸습니다.

저녁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그냥 가지 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비가 오더라도 바다를 보고싶다는 친구들의 간곡한 부탁을 못이겨 마지못해 여수행 열차에 몸을 싣기로 했습니다.

일출을 찍고 싶었지만 아침에 비가온다길래 큰 준비는 하지 않았습니다.

콘탁스 바디에 표준렌즈,야시카 바디도 빼고 28-85렌즈 하나, 후지 프로비아 100 한통,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후지 센시아 100 한통, 그리고 예전에 쓰다남은 리얼라 한통을 가방에 담고, 삼각대 대신 우산을 들고 열차에 올랐습니다.

기차안에서 6시간 반을 가는 동안 서울,경기지방에서는 비가 내렸고 대전을 가로지르는 충남,전북지방에서는 눈발이 거세게 날려 오늘도 일출사진은 포기해야겠다는 생각만 계속 들곤 했습니다.

11시 반에 출발한 열차가 6시 남짓되서야 여수역에 도착, 피곤에 지친 눈을 비비며 땅을 밟는 순간 왠지 차가워진 공기를 실감했습니다.

'구름이 있다면 이렇게 춥진 않을텐데..'

이런생각을 하며 하늘을 쳐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늘에는 구름한점 없이 깨끗하고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나를 비롯하여 기차를 탔던 많은 이들이 탄성을 질렀음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여수역 앞의 식당에서 바삐 아침을 챙겨먹고 택시를 잡아 향일암으로 향했습니다.

해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나있다는 향일암, 도대체 얼마나 멋진곳일까.. 하는 기대로 40분 남짓 달린 산간도로가 길게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향일암에 도착.
향일암 입구쯤에 걸어올라가자 윗쪽에서 사람들의 탄성과 염불외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 해가 이제 뜨는구나..!"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바쁘게 뛰어 올라갔습니다. 붉게 물들어진 하늘과 맞닿은곳이 빨갛게 피어오르는 찰나였습니다.
미리 세팅해 둔 카메라를 들고 해를 향해 셔터를 눌렀습니다. 미처 날씨가 맑은것을 예상하지 못한터라 삼각대를 준비하지 못한게 아쉬운점이었지만 우선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담기 위해 머릿속에 외워뒀던 촬영방법을 차례차례 따라했습니다.

떠오르는 해에 스팟측광으로 노출값을 딴 후에 AEL을 걸어서 노출을 고정시켰습니다.
그리고 구도를 잡고 브라케팅을 ±1간격으로 세장씩 촬영을 했습니다.

너무 급하게 촬영했는지 해가 반쯤 떠올랐던 3분쯤 경과했을때 프로비아 한통이 이미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으.. -_-;; 아까비...) 급한 마음에 손이 떨리는 걸 진정시키고 센시아로 바꿔끼우고 다시 브라케팅 촬영을 했습니다.

일출이 진행된 5분여동안 한 장소에서만 슬라이드 필름 2통(60장)을 다 써버리고나서야 무언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일출 사진을 찍고자 했으나 동해에서 2번,서해에서 2번, 부산에서 1번 실패를 한터라 급한마음이 앞섰던 것도 그 이유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바닷가에서 일출을 본게 단 두번이었는데 그것 모두 여수(무술목,향일암)에서 봤다는 사실이 이 바다에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 것이였습니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너무 무리했던 감도 있었지만 모처럼 뿌듯하게 사진을 마치고 나와서인지 차가운 바람에도 그리 추운느낌이 없었고, 향일암에서 내려오는 300계단도 그리 멀지만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시금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그 바다에 다시한번 찾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_^